일본 철강업계의 거목, 이나야마 요시히로(稲山嘉寛, 1987년 작고) 신일철 전 회장은 일본 철강업의 역사에서 대단한 업적을 남긴 인물로서 일본 게이단렌의 회장직도 수행한 바 있다. 마쓰시다 고노스케(松下幸之助, 1894~1989, 마쓰시다그룹 창업자)를 ‘경영의 神’이라고 한다면, 이나야마 요시히로 회장은 ‘철강업의 神’’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철강산업을 국가기간산업 또는 국위산업이라고들 한다. 이와 관련하여 신일철의 이나야마 요시히로 회장은 ”철은 곧 국가”이며, “철강업은 기간산업 중의 기간산업이고 공익성이 굉장히 높다. 따라서 일개 기업 차원의 이윤추구만 해서는 안 된다. 관련 산업에 골고루 혜택을 주면서 확대 재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나야마 요시히로는 1970년 3월, 야와다제철과 후지제철이 통합하여 발족한 신일철의 초대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취임 이후 일본 철강업의 기술혁신과 비약적인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 왔다. 특히 1972년 4월에는 세계 최초로 오이타(大分)제철소에 전연속주조 방식을 적용하였고, 이를 계기로 신일철의 모든 제철소에 연속주조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연속주조는 철강산업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혁신기술로 평가되는 기술이다. 특히 1,2차 오일쇼크 위기 극복을 진두 지휘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에너지 사용효율이 높은 국가로 전환하는데 일조했다.
그는 또 브라질과 한국, 중국 등에서 철강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협력에 있어서도 매우 적극적인 지원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1970년에는 한국의 포스코와 기술협력계약에 조인했고, 1972년에는 브라질 국영 우지미나스가 확장공사를 할 때, 기술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78년에는 중국 정부가 상해 보산제철소를 건설할 때, ‘중국협력본부’까지 만들 정도로 적극성을 보였다.
한국철강업과의 인연
이나야마 요시히로 회장은 우리나라 철강업계에도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포스코 성공신화의 키워드로 빼놓을 수 없는 ‘철의 사나이’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도 “이나야마 요시히로 회장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포스코는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회상할 정도이다. 이나야마 회장이야말로 박태준 회장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또 가장 신뢰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이나야마 요시히로 회장과의 인연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끝난 뒤 박대통령이 1년간 경제개발을 공부하라고 저를 일본에 보냈습니다. 홋카이도에서 규슈까지 제철소를 다 훑었죠. 일본 사람들도 제철소를 쉽게 하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하지만 철저히 그리고 열심히 하면 우리인들 못할 게 없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그때 이나야마 요시히로 회장을 만났죠. 그분은 금세 내 인간성을 파악하고 애국심도 있다고 봤죠. 그리고 일본에서 제철소가 기반을 잡을 때까지의 이야기를 쭉 해줬던 분이에요. 나중에는 친해져 술도 마시고 차 안에서 둘이서 노래를 부를 정도였죠”.
이런 일화도 있다. 1978년 중국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은 이나야마 요시히로가 신일철 회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일본 기미츠(君津) 제철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덩샤오핑은 이나야마 요시히로에게 “중국에도 포항제철과 같은 제철소를 지어달라.”고 했다가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느냐”는 반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투철한 절약정신
한편 이나야마 요시히로 회장은 평소 매우 검소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한번은 한국의 일본 전문가가 이나야마 요시히로 회장의 하꼬네에 있는 별장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이나야마 요시히로가 현직 게이단렌(일본 경제인연합) 회장일 때의 일이다. 그 일본 전문가는 “이나야마씨의 직위나 명성으로 보아 분명히 호화별장일 것으로 상상했지만, 차에서 내려서도 오솔길로 한참을 걸어가야 했으며, 집 주변엔 그 흔한 차고나 주차장도 없었다.”며 매우 실망스러웠다고 한다. 별장 앞에 이냐야마라는 문패가 있었지만, 워낙 낡은 목조건물이라 미닫이 문도 삐걱거리며 잘 열리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 한 지인은 “여름이어서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부엌에 들어서니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는 듯 졸졸 나오고 있었다. 새는 물을 양동이에 받고 있었다. 수도꼭지가 새는가 싶어 잠그려 하자 주인인 이나야마 요시히로 회장이 질색을 하며 저녁 밥 지을 물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꺼번에 확 틀어 물을 받는 것보다 경제적이라는 것이다.”라고 회상하였다.
이 같은 이나야마 요시히로 회장의 철저하리만큼 투철한 절약정신은 아마도 오늘날 일본 철강업이 에너지 사용에 있어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것으로 평가 받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철을 국가로 여길 정도로 철은 그에게 있어 거의 종교였다. 최근 일본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일본 철강업이 여전히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만큼 그 밑바탕에는 고도성장기에 일본 철강업의 발전을 이끌었던 이나야마 요시히로 회장의 정신과 노력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