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새해에는 모든 일이 술술 풀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우리네 살림살이가 나아졌으면 좋겠다. 경제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정초부터 희망이 보인다. 올 한해 세계적으로 경제가 소폭이나마 회복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 회복에 대한 세인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새해 글로벌 증시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내림세로 출발했다. 신흥국의 외환불안도 여전했다. 한때 ‘아시아의 떠오르는 별’로 불리며 세계경제의 기대를 모았던 인도네시아의 통화가치는 5년 내 최저치로, ‘유라시아의 떠오르는 호랑이’ 터키의 리라화는 사상 최저치로 추락하면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5년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위기의 그림자는 여전히 우리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듯하다.
최근 글로벌컨설팅회사 맥킨지의 연구조사기관인 매킨지글로벌인스티튜트(MGI)가 의미 있는 분석을 내놨다. 지난해 국가 간 자본유입량이 2008년 금융위기 직전의 30% 수준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급격히 위축된 자본 흐름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침체 국면을 보일 것으로 예상돼 세계경제의 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현상은 2008년 9월 리먼 사태 이후, 미국을 필두로 선진국들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 과감하게 돈을 풀었으나, 풀린 돈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제대로 돌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은행들이 해외, 특히 신흥시장에 대한 대출을 조이면서 초래된 결과다.
돈 가뭄에 시달리던 신흥국의 기업과 금융사들은 달러를 조달하기 위해 해외채권을 대거 발행했다. 이렇게 대출된 금액의 정확한 규모는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제금융협회(IIF)는 금융위기 이후 5년간 신흥국으로 유입된 자금이 1조4천억~4조2천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바로 이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부채’가 신흥국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돈 풀기를 자제하는 ‘양적완화 축소’(tapering)에 돌입함으로써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고 금리 인상 행진이 시작되면, 저금리로 해외에서 빌린 달러 부채가 신흥국 기업에 엄청난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해 12월 19일 당시 월 850억달러인 양적완화(QE) 규모를 2014년 1월부터 750억달러로 100억달러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앞으로도 속도가 문제일 뿐 1, 2년 안에 양적완화의 종료까지 감안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우리가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경제 변수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속도’다. 미국의 출구전략 속도에 따라 세계경제가 큰 충격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출구전략과 ‘연결돼 있는 리스크’(Linked Risks)가 이제 막 회복 국면에 접어든 세계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출구전략과 연결돼 있는 리스크 중 우리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국의 상황이 가장 우려된다. 중국의 이른바 ‘그림자 금융’(감독이 허술한 제2금융권)이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속도에 따라 언제든 금융시스템을 마비시키는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의 금융부채는 과도한 대출과 그림자 금융의 급속한 확대로 그 규모가 금융위기 초 GDP 대비 130%에서 최근 200%까지 치솟았다.
중국 정부는 이에 그림자 금융을 규제하기 위해 돈줄을 죄고 있다. 미국의 출구전략 속도가 중요하듯이 중국의 금융개혁 속도도 민감한 변수다. 결국 미국과 중국에 수출하는 것으로 먹고사는 한국으로서는 올 한 해 이들 두 나라의 ‘돈 죄기’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적정 속도’가 유지돼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적정 속도를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이 글로벌 경제의 회복 전망에도 불구하고 결코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되는 이유다.
고준형/포스코경영연구소 상무·글로벌경제정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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