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에너지 소비 절감에 총력
사상 유래 없는 고유가 행진과 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인해 현재 범세계적인 에너지 절감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는 자율적인 차량 5부제를 시행하는가 하면, 관공서는 2부제로 주차를 제한하고 있으며, 각 기업체에서는 에너지 절감을 위해 실내 냉방온도를 조금 올리는 대신 넥타이를 풀고 근무하도록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 운행 층을 고층 중심 또는 격 층 운행으로 제한하여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에너지 소비 절감 노력은 유엔 사무국에서도 볼 수 있었다. 아무리 더워도 정장에 넥타이를 착용하는 게 외교 관행인 유엔 사무국에서 조차, 8월 한 달간은 넥타이를 풀고 근무하는 ‘쿨 유엔(Cool UN)’ 운동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반기문 총장이 지구 온난화 대처에 모범을 보이자는 의미에서 유엔 직원들부터 8월 한 달간 넥타이를 풀고, 간소한 복장을 입자고 권했다고 한다. 한편 유엔 사무국은 반 총장의 권고에 따라 8월 한 달간 유엔 본부 실내 온도를 섭씨 22.2도에서 25도로 높였는데, 이를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00t 감축하고 1억 원 이상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에너지 절감 기술의 CORE: 전기강판(Electrical Steel)
철강제품은 에너지 소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우리가 자주, 쉽게 눈으로 접하는 철강제품들은 대부분 제품의 외판재나 구조용으로 사용된다. 철강재가 많이 사용되는 자동차나 선박의 중량 대부분은 철강재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 제품보다 가벼우면서 동일하거나 큰 강도를 지닌 제품(고강도강)을 만든다면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다. 1,000kg 중량의 자동차보다는 900kg 중량의 자동차가 에너지 소모량이 분명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량소재의 개발 경쟁은 최근 매우 치열해져 철강사 및 범 소재업계 간의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철강제품 중에는 전력의 생산부터 송배전 그리고 전력의 소모에 있어서 이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제품이 있는데 바로 전기강판이다.
전기, 자기 그리고 힘의 함수
전기강판은 일반강과는 다른 기능성 제품으로 철손(Core loss)와 자속밀도(Flux Density, Magnetic Induction) 등의 전기적 특성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인장강도나 경도 같은 기계적 특성이나 내식성 등의 화학적 특성은 타제품에 비해 중요도가 낮은 편이다. 여기서 철손은 자기의 통로로 작용하는 철심의 자화과정에서 발생하는 자기저항에 의한 에너지 손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속밀도는 일정한 자화력(전기에너지)을 받을 때 발생하는 단위 면적당의 자력선의 수로, 쉽게 설명하면 같은 전기에너지를 가했을 때 얼마나 자기에너지(자력선의 수)를 나타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특성치이다.
전기강판의 특성은 암페어(Ampere)의 오른손 법칙, 플레밍의 왼손 법칙 등을 생각해보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가정에서 사용하는 진공 청소기나 냉장고 모터 등은 콘센트에 플러그를 연결하면 전기에너지가 바로 동력으로 변환되는 것이 아니라, 전기에너지가 자기에너지를 유도하고, 자기에너지가 힘(Force)의 생성에 매개체로 작용하는, ‘전기에너지 → 자기에너지 → 힘에너지’의 변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전기강판은 적은 전기에너지로 높은 자기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전기에너지가 자기에너지로의 변환과정 중 손실(철손) 등을 최소화하게 만든 제품이다. 전기강판은 철에 규소(Silicon)를 1%~5% 첨가시켜 제조하기 때문에 Silicon steel로 불리기도 한다.
<그림1> 전기강판이 사용되는 제품들

전기강판의 종류
전기강판은 방향성 전기강판(Grain Oriented)과 무방향성 전기강판 (Non-Oriented)으로 구분된다.
방향성 전기강판은 특수한 공정을 거쳐 철판의 압연 방향을 일정한 방향으로 조정하여 자기적 특성을 대폭 향상시킨 제품으로 주로 변압기에 사용된다. 물질의 원자는 (+), (-)의 자극(Magnetic Pole)을 가지고 있고, 같은 방향의 자극을 갖는 원자들의 집단을 자구(Domain)라고 지칭하는데, 전기에너지에 의해 자계(Magnetic Field)가 형성되면 자구벽이 이동하여 자성을 띄게 되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무방향성 전기강판은 결정이 방향성을 띄지 않고 불규칙(Random)하게 배열된 제품으로 대형 발전기로부터 소형 정밀전동기까지 회전 기기의 철심(Core) 소재로 널리 사용된다.
전기강판 고급재 수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미래 사회의 기반 기술제품으로 모터의 사용범위와 시장은 무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심지어 모터의 보유 수량은 개인 문화 수준의 척도로 평가 받기도 한다. 실제로 1990년대 승용차 1대당 사용되는 모터의 수는 30여 개에 불과했지만, 현재 나오는 고급 승용차는 차량 1대당 120여 개의 모터가 사용된다. 모터의 사용 범위가 많아지는 한편, 크기는 작아지고 소음은 줄어들고 있다. 한정된 에너지원 및 공간에서 에너지 이용을 극대화 하기 위해선 기존의 모터보다 효율이 좋고 자기적 특성이 좋은 모터가 요구되는데,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전기강판 고급재의 사용은 불가피한 것이다.
세계 각국의 정부는 에너지 소비 절감을 위해 전력의 발전, 송배전에 사용되는 변압기 및 중전기기와 가전제품 등에 대해 에너지 효율 등급 규제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점차 등급의 기준도 상향되어 적용하는 추세이다. 단적으로 일본에서는 톱 러너(Top Runner) 방식을 통해 변압기의 경우 1999년 대비 에너지 소비 효율이 30% 이상 개선된 변압기만을 사용하도록 하는 규제 법안을 적용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지구환경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과도 맞물려 전기강판의 기능성은 앞으로 점점 중요해질 것이며, 소재개발은 물론 이용기술 연구도 더욱 진전을 보일 전망이다.
* 톱 러너(Top Runner) 방식: 에너지를 대량으로 소모하는 전기/전자제품, 자동차 등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할 경우 매우 큰 에너지 절약이 기대되는 품목을 대상으로 일본 내 동종 업계 내에서 현시점에서 가장 양호한 에너지 효율 제품을 기준으로 정해 모든 국내 생산업체들이 일정한 목표 시기까지 이 기준에 이르도록 의무화하는 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