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세머(Bessemer)가 전로법을 고안하면서 인류가 강(鋼)을 양산하는 시대가 도래했지만, 여전히 품질에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인을 0.1% 이상 포함하는 철광석으로는 강의 품질을 제어하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인을 함유하지 않은 적철광이 풍부한 지역에서만 베세머 전로법을 활용할 수 있었는데, 그런 양질의 적철광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유럽 철광석 산지의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염기성 제강법을 개발한 토마스(Sidney Gilchrist Thomas)
베세머 전로법으로 제어할 수 없는 탈린의 문제를 해결한 제강법이 개발되는데, 바로 토마스(Sidney Gilchrist Thomas)가 개발한 염기성 제강법이다. 1850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토마스는 처음에 의사가 되려고 화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망으로 가족을 부양해야 할 처지가 되자 17세 때부터 재판소의 서기로 일하게 된다. 그는 서기로 일하면서도 학문에 대한 강한 열망을 놓지 못하고 야간대학에서 화학 공부를 계속했다.
1870년 토마스는 강의 시간에 “베세머 전로에서 인을 제거한 사람은 행운을 잡을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새로운 전로법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된다. 토마스는 용선 중의 인을 산화시켜 제거하려면 산성인 산화인이 염기성 슬래그에 머물러야 하고 염기성 슬래그를 사용하려면 제강로의 내벽도 염기성 내화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염기성 전로를 제안한다. 토마스는 염기성 내화물에 적합한 물질을 찾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거듭했다. 그가 찾아낸 내화물은 탄산칼슘과 탄산마그네슘의 혼합물인 백운석(Dolomite)이었다. 동시에 토마스는 내화물을 적절히 가공하는 방법을 고안했으며 타르를 점결제로 사용하면 효과가 있다는 점도 알아냈다.
토마스는 1876년에 염기성 제강법을 상용화하는 작업을 추진한다. 1878년 영국철강협회 총회에서 자신의 염기성 제강법을 소개할 기회가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당시28세에 불과한 무명의 청년이 발표한 결과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미들즈브러에 있는 이스턴제철소가 토마스의 특허를 매입하겠다고 제안하여, 마침내 1879년에 염기성 전로가 상업화되었다.
토마스의 염기성 제강법이 출현하면서 인을 많이 포함한 철광석으로도 강철을 제조할 수 있게 되었다. 염기성 제강법은 스웨덴, 프랑스, 독일,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으로 전파되었다. 또한 염기성 제강법의 부산물로 생성된 인산염은 비료로 사용되어 농업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독일 도르트문트에 전시된 토마스 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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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20세기에 들어서도 전로법은 꾸준히 기술 개발을 거듭했다. 특히 1952년과 1953년에 오스트리아의 린츠(Linz)제철소와 다나비츠(Danawitz)제철소에 설치된 산소 제강법은 1960년대 이후에 전 세계에 보급되어 오늘날의 지배적인 제강법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산소 제강법은 두 제철소의 앞 글자를 따서 보통 ‘LD 전로’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