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신문·포스코경영연구소 20주년 공동기획
4. 신비로운 철의 세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철’ 하면 무겁고, 딱딱하고, 견고한 이미지를 떠올리곤 한다. 그래서 쉽게 휘지도 부러지지도 않는 특성만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 철강재도 많이 있다. 본래 모양을 찾아주는 형상기억합금, 무거운 탱크를 들어올릴 수 있는 철사, 옷을 만들 수 있는 금속섬유 등 상식을 깨는 신비로운 철을 소개한다.
<편집실>
형상기억합금
형상 기억해 자동 복원… 안경테·치아교정기에 활용
비정질 합금
부식·마모에 강해 연료탱크·오디오 헤드 등으로 쓰여
금속섬유
금속과 나노기술의 결합… 우주복·단열재 등에 유용
섀도 마스크
3색 투과 얇은 금속판, 화면 색번짐 막고 입체화질 구현
니켈-티타늄 합금에서 ‘형상기억 효과’ 발견
생김새를 기억하는 금속이 있다. 보통 금속은 탄성한계라는 것이 있어서 한계치 이상의 힘을 가해 변형하면 원래 형태로 좀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형상기억합금은 모양이 바뀌더라도 예전의 형상을 기억시켜둔 특정 온도까지 온도를 올리면 본래 모습을 되찾아갈 수 있다.
예를 들어 100℃ 정도에서 자기 형상으로 복원되는 형상기억합금으로 안경테를 만들면 평상시 사용하던 안경테가 심하게 휘어지더라도 100℃까지 온도를 올려주기만 하면 원래 안경테 모습으로 복원되는 것이다.
금속에 형상기억 효과가 있다는 것은 1938년 미국 하버드대와 MIT 교수들에 의해 처음 규명되었지만 실용적으로 이용될 만한 합금을 발견한 것은 1964년 미국 해군무기연구소였다.
연구원들은 미 해군 잠수함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즉각 보수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새로운 잠수함 소재를 개발하던 중 니켈-티타늄 합금에서 우연히 형상기억 효과를 발견했다. 이렇게 발견된 합금을 두 원소의 이름을 따서 ‘니티놀’이라 명명했다.
형상기억합금의 원리에 대해서는 아직 완전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합금을 구성하는 결정구조와 관련이 있다고 추정된다.
보통의 금속재료는 가열하여 급랭하면 단단한 ‘마텐자이트(martensite)’라는 조직이 되는 데 반해 형상기억합금은 마텐자이트 쪽이 원래 형상보다 훨씬 무르다. 따라서 외부의 힘에 쉽게 변형되지만 온도를 올리면 원래 조직으로 돌아가면서 변형된 것이 모두 소실된다는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기억력이 사람마다 다르듯이 형상기억합금 또한 어떤 원소로 구성되느냐에 따라 형상에 대한 기억력이 다르게 나타난다. 지금까지 개발된 형상기억합금 중 대표적인 것으로 니켈-티타늄 합금, 구리-아연-알루미늄 합금 등이 있는데 값이 비싼 게 흠이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철로 만든 형상기억합금이다.
군사용으로 개발된 형상기억합금은 현재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TV 광고 등으로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형상기억합금 메모리 와이어를 사용한 여성용 브래지어는 1986년 W사가 상품화해 보편화되었다.
브래지어에 사용되는 메모리 와이어는 피부에 닿으면 처음 모양으로 돌아오는 기능이 있으며 세탁 때마다 휘고 구부러져 망가지던 기존 합금 소재의 단점을 보완했다.
보통 합금보다 신축성이 10배 이상 크기 때문에 세탁 시 와이어가 늘어나더라도 다시 36.5℃의 피부 표면과 접촉하면 원래 상태로 되돌아온다. 최근에는 안경테, 치아 교정용 와이어 외에도 일정한 온도를 기억시켜 그 온도의 원형으로 돌아오는 성질을 주어 자동차의 외판재로 사용되기도 한다.
용융 상태 합금 급속 냉각… ‘고강도 철사’ 만들어
보통 탱크 1대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통상 60톤 전후라고 한다. 60톤이면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의 거대한 코끼리 10마리 중량에 해당하고, 성인 약 1000명의 몸무게를 합친 것과 같다. 그런데 이 탱크를 철사로 들어올릴 수 있다고 한다.
어떻게 만들기에 가능할까? 일반 철사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용융 상태의 합금을 극히 짧은 시간에 급속 냉각하여 결정 상태를 바꾸어준다.
그렇게 되면 그 구조가 결정 상태인 금속과는 달리 비결정 구조를 갖는 금속이 만들어진다. 비정질 금속은 결정질 금속에 비해 강도가 몇 십 배나 되며, 뛰어난 내마모성과 자기적 특성을 갖는다. 그리고 부식에 대한 저항이 스테인리스강의 100만 배나 되는 것도 있다.
동일한 합금을 가지고도 제조방법에 따라 비정질이 되기도 하고 결정질이 되기도 한다. 이론적으로는 거의 모든 재료를 급속 냉각하면 비정질 상태로 만들 수 있지만, 합금마다 비정질 상태로 되기 위한 냉각 속도엔 차이가 있다.
현재 개발된 비정질 합금은 비정질 상태를 만들기 위한 냉각 속도가 비교적 낮은 재료들이다. 철에 크롬을 섞어 비정질 합금을 만들면, 현재 사용되는 고강도 강의 55배 정도의 강도가 된다.
지름 1㎝의 비정질 합금선으로 탱크도 거뜬히 들어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비정질 합금은 부식에 강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각종 화학물질을 보관하는 화학 연료탱크, 염료 저장탱크 등에 사용될 수 있다.
다만 가공성이 나쁘고 열에 약해 용접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비정질 합금의 우수한 특성을 이용한 대표적인 예는 오디오 및 비디오에 쓰이는 헤드다.
비정질 합금은 마모에도 강할 뿐만 아니라 자기적 성질이 뛰어나기 때문에 비정질 합금을 사용해 헤드를 제조하면 잡음이 없이 매우 민감한 소리도 감지할 수 있으며 아주 선명한 화면을 볼 수 있다.
나노기술로 머리카락보다 얇은 ‘금속섬유’ 제조
금속으로 옷을 만들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옷을 만드는 소재는 잘 구부러져야 하고 내구성·통기성·흡수성·흡습성이 좋으며 착용감이 뛰어나고 세탁이 쉬워야 한다.
그런데 철은 이러한 특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당연히 금속으로는 옷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실생활이 아닌 예술품으로서의 금속 옷은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생활에서는 금속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상식도 편견일 수 있다. 금속섬유의 존재 때문이다. 금속섬유(metal fiber)는 금이나 은, 철, 알루미늄 등 금속을 특수 가공하여 만든 섬유를 일컫는다.
지름의 크기에 따라 극세사와 초극세사로 구분할 수 있다. 보통 사람의 머리카락 굵기가 100㎛ 내외인데, 금속섬유는 이보다 더 얇다. 그래서 금속섬유를 제조하려면 다양한 나노기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역사적으로도 인류가 금속을 의류에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 이전부터 귀족의 장식용으로 사용되었으며 고대 중동지방의 페르시아와 아시리아에서도 금속으로 만든 실을 옷을 만드는 데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때의 금속사(金屬絲)는 주로 천연섬유 위에다가 금이나 은을 입힌 것이 대부분이었다. 유럽 중세에는 강철 고리를 맞물려 사슬 갑옷을 만들기도 했으나 실질적인 금속사의 시초는 1960년대 우주개발 목적으로 우주복에 사용할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지구와는 다른 높은 온도와 강한 빛들에 노출된 우주공간에서 인체를 보호해줄 우주복의 개발 필요성은 금속섬유에 대한 연구를 활발하게 하는 자극제였다.
물론 금속섬유는 유기화합물로 만들어진 일반 섬유에 비해 여전히 무겁고 열전도율 역시 매우 높아 아직까지도 일반적인 의류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금속섬유는 다른 섬유 소재가 갖지 못하는 전기도전성은 탄소섬유의 20배나 될 정도로 크다.
또한 금속섬유는 750~1250℃에서도 견디는 강력한 내열성을 보인다. 또한 고강도의 특성치를 가지고 있으며 세라믹 섬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균일한 강도 값을 갖는다.
악취를 제거하고 인체에 유해한 균을 없애주기도 한다.
이런 특성치 때문에 금속섬유는 직물에 스틸섬유를 섞어서 정전기를 영구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정전기 방지 소재를 비롯해 단열재와 고순도 필터, 소음 차단재, 전자파 차폐재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2001년 금속섬유를 사용한 임부복이 개발되기도 했고, 이라크전에 미군이 착용한 군복과 방독면 소재에도 금속섬유가 사용되었다.
기술 문명이 어떻게 발전하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 섬유를 대신할 철강 신소재의 탄생을 염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물에 넣으면 세탁하기 편하고, 인체에 닿으면 실크처럼 부드럽고, 살에 닿아도 베이지 않는 철강 의상,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뛴다.
섀도 마스크, 대형 컬러TV의 선명도 높여
2014 브라질월드컵을 안방에서 텔레비전으로 시청하고 있는데도, 마치 현장에서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입체적이면서도 선명한 화질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선명하고 생생한 대형 화면을 보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의 첨단기술을 한 군데 모아야만 가능하다.
컬러 브라운관은 빨강·파랑·녹색 등 3색의 전자광선이 섀도 마스크(shadow mask)를 통과하여 형상 스크린에 투사되면서 화상으로 나타난다. 섀도 마스크는 형상 스크린 안쪽에 있는 금속판을 말하는 것으로 미세한 구멍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얇은 철판이다.
섀도 마스크의 역할은 전자총에서 나온 빨강·파랑·녹색빛이 각각의 형광판에 도달하도록 스크린하는 것이다. 섀도 마스크가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색 번짐이 일어나 선명한 색상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전자총에서 나온 광선의 영향을 받아 온도가 올라가면 섀도 마스크가 열팽창하게 된다.
그 결과 섀도 마스크의 구멍 위치가 변하면 빨간색 전자총에서 나온 광선이 녹색 또는 파란색의 형광 색소 위에 떨어지게 되어 색이 번지거나 엉뚱한 색이 나오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화면이 커질수록 더욱 심각해진다.
요즘 시판되는 텔레비전은 대형화면인데도 더욱 선명한 화질을 자랑하는 것은 우수한 섀도 마스크용 재료가 개발된 덕분이다.
박현성 수석연구원 <포스코경영연구소>
게재지: 포스코신문<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