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국 포스코경영연구소 북경사무소장] 중국의 대표 철강업체 바오강(寶鋼)의 쉬러장(徐樂江) 회장이 최근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던졌다. 중국 철강산업의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쉬 회장은 “현재 철강업계는 단지 ‘깊은 가을’에 진입했을 뿐 아직 ‘겨울’에 들어선 것은 아니다”라며 “중국 철강업계의 공급과잉 최고조는 13차 5개년 기간(2016~2020년) 에 올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철강공급 과잉의 주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지방정부의 국내총생산(GDP) 성장 우선주의 만연이다. 철강산업은 대규모 장치산업인 만큼 철강 프로젝트 유치는 지방정부의 GDP 총량, 세수, 고용 측면에서 공헌도가 크다. 그러다보니 기업 수익성을 따지지 않고 철강 프로젝트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철강사 규모의 경제 추진과 은행 신용대출 확보 목표다. 철강사 입장에서는 설비 규모가 커질수록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릴 수 있고 은행대출 접근이 수월해져 경쟁력 유지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부 주도의 강제적 인수·합병(M&A)이다. 영세한 철강사들은 정부 주도 인수합병 정책의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 자구책으로 생산설비를 확대했다. 2006년에서 2012년 사이 도태된 조강 생산능력은 7600만 톤에 그쳤지만 이 기간 신규 생산능력은 4억4000만톤에 그쳤다. 낙후설비 도태정책이 강화될수록 전체 생산능력은 오히려 증가하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 속에서 중국 철강산업의 공급과잉은 악화일로에 있다. 중국 철강산업의 가동률은 2000~2006년 80% 이상, 2006~2011년 75~80%, 2012년 74.9%까지 낮아지고 있다. 쉬 회장은 이러한 추세가 이어진다면 향후 더 어려운 시기가 올 것이며 설비 가동률이 60% 이하로 떨어지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철강사들이 경영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암울한 전망도 내놨다. 공급과잉뿐 아니라 높은 연원료 가격 등으로 철강사 수익률이 더 악화되고 연간 적자를 기록하는 기업이 속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철강 등 9개 중점산업에 대한 ‘기업 간 M&A 가속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그 효과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많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 특성상 정부주도로 추진되는 M&A 정책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과거에도 많은 철강사가 기업 간 M&A를 단행해 통합됐지만 실질적인 내부 통합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재 중국 철강산업은 공급과잉과 수요부진 문제를 구조조정이 아닌 수출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중국철강협회는 수출확대가 중국 철강업계 수익성 개선의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하며 장기적 발전에 저해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중국 철강사들은 생존차원에서 잉여물량 밀어내기에 나선 셈이다. 올해 중국의 연간 강재수출량은 8400만 톤 내외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수출량은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중국 철강산업의 겨울 진입에 따른 영향은 중국 자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철강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 철강산업이 처한 현실이 전 세계 통상마찰 및 보호무역주의 확산을 촉발시킬 뿐만 아니라 한국시장에서 중국산 수입압력이 거세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 철강업계는 이에 대한 준비에 나서 한국 철강산업에 겨울이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게재지: 이데일리<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