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기가스 배출 기준이 강화되는 ‘유로(Euro) 6’가 9월 1일 전격 시행되면서 국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시장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유로 6는 유럽연합(EU)이 도입한 경유차 배기가스 규제의 명칭을 뜻한다. 1992년 ‘유로 1’을 시작으로 2013년 유로 6까지 지속적으로 강화돼 왔다.
유로 6 기준은 2015년부터 국내 디젤 신차에도 적용된다. 버스와 덤프트럭 등 대형 상용차는 지난 1월부터 이미 적용, 시행됐고 중소형 상용차와 승용차는 9월 1일부터 적용 받는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유로 6 기준에 맞추기 위해 신형 엔진을 장착하거나 별도의 공해 저감 장치를 추가 장착해야 하기 때문에 원가에 상당한 부담을 줄 전망이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몇몇 차종은 단종될 것으로 보인다.
석유파동으로 경량화 연구 시작
유럽이 질소산화물 등 배기가스 기준으로 자동차에 대한 환경 규제를 강화하는 반면 최대 자동차 수요 시장인 미국은 자동차에 대한 연비 규정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새로운 연비 규정(CAFE)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사별 평균 연비는 2012년 평균 27.5mpg(Mile per Gallon)에서 2025년 54.5mpg로 약 2배 수준의 연비를 개선해야만 한다. 이에 따라 자동차 메이커들은 이러한 연비 규정을 충족하기 위해 차량 경량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고 이는 곧 자동차에 사용되는 소재 간의 경쟁을 야기하고 있다.
자동차 경량화를 위한 주력 연구 분야는 크게 소재·구조·프로세스 등 세 가지다. 소재 연구 분야는 자동차에 사용되는 소재를 강도가 더 강하고 중량이 가벼운 신규 소재로 대체하는 것이고 구조 분야 연구와 제조 프로세스 연구는 각각 자동차 구조 자체를 합리화하거나 프로세스상에 신공법 등을 사용해 경량화를 추구하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10%의 중량 감소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6~8% 저감시킨다고 하는데 위 세 가지 방법 중 경량화 성과가 특히 높은 분야는 소재를 통한 경량화다.
자동차 산업에서 이러한 경량화 연구의 시작은 1970년대 두 번의 오일 위기를 겪은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1990년대 교토 협약 이후에는 알루미늄 등 경량 금속의 사용이 증가했다. 이에 따라 미국 중형 승용차의 평균 중량은 1977년 1663kg에서 2000년 1491kg으로 10.4% 감소했다. 차량 1대당 소재별 중량비 변화를 살펴보면 플라스틱·알루미늄·마그네슘 등 비철강 소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반면 철강 비율은 감소한 것을 알 수 있다.
자동차 소재 중 높은 점유율 상승을 보인 알루미늄을 살펴보면 철강 대비 3분의 1 수준의 가벼움을 내세워 도어 및 엔진 후드, 범퍼 및 서스펜션 부품까지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가격이 철강에 비해 비싸지만 경량화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마그네슘·타이타늄 등 다른 경량 금속을 제치고 자동차 소재 시장에서 철강을 강력하게 위협하고 있다.
2014년 12월 출시된 포드의 ‘픽업트럭 F-150’은 기존의 고급 승용차에만 채용했던 알루미늄 차체 및 클로저(Closure) 부품 등을 채용하면서 철강 대 알루미늄의 자동차 소재 전쟁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됐다. 알루미늄 업계는 이러한 기조에 맞춰 북미 자동차용 알루미늄 생산능력이 2013년 38만 톤에서 2018년 100만 톤으로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35개 철강사 뭉쳐 초경량 제품 개발
하지만 철강 업계는 알루미늄 가격이 동일 중량 철강 대비 4배 수준이며 경량화 효과를 고려하더라도 자동차 1대당 소재 원가가 2배 이상 높은 약점과 함께 철강 대비 높은 가격 변동성 및 차량용 공급 능력의 제약 등으로 향후 채용 확대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F-150 트럭은 알루미늄 차체 채용 등으로 평균 판매가가 2000달러 인상됐는데 제너럴모터스(GM) 등 경쟁사 차종보다 떨어지는 연비를 보완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포드가 알루미늄 차체를 전격 채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 다른 경량 소재인 플라스틱은 지난 몇 년간 비약적인 기술 발전이 있었는데 과거에는 내장 및 기능성 부품에 한정적으로 사용됐던 반면 최근에는 기존의 한계를 극복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등이 개발돼 외판재 및 유리를 대체하는 등으로 적용 범위를 넓혀 가고 있다.
BMW가 출시한 전기차 i3는 내부에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을, 차량 외장재에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채용해 동종 경쟁차 대비 200~300kg 수준의 경량화를 실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은 대규모 시설 투자 및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산업의 특수성으로 소수의 선진 업체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돼 타 소재 대비 높은 원가 문제 및 제한적 공급 지역 등의 문제가 있다.
철강은 저탄소 철(Low Carbon Ferrous)이 71%(1977년)에서 52%(2010년)로, 고강도강(Hi·Med Strenth Steel)은 1977년 3%에서 2010년 11%로 변화했다. 전체 중량비는 1977년 75%에서 2010년 63%로 감소했다. 하지만 철강의 중량비 감소는 적용 부위의 감소라고 판단하기보다 초고강도 강판 채용에 따른 소재 차체의 중량 감소 효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소재의 약진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철강 업계도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35개 철강 회사들이 공동으로 ULSAB(Ultralight Steel for Auto Body) 프로젝트를 수행해 고장력 강판 등의 개발과 차체 경량화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2008년부터 친환경 자동차를 위한 미래 자동차 프로젝트(Future vehicle project)를 수행했다.
유럽의 대표 철강 회사인 아르셀로미탈은 ‘에스 인 모션(S in Motion)’ 프로젝트를 통해 소형 차량 콘셉트 디자인을 자체 제작하고 경량화율을 기존 차량 대비 19% 달성했으며 포스코와 프랑스 르노가 공동 개발한 이오랩 프로젝트 등이 자동차 경량화를 위한 철강 업계의 대표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철강 업계의 성과는 2003년부터 개발한 초고강도 강판(AHSS) 등의 신제품 개발이다. 철강 업계는 향후에도 차체용 소재 시장에서 철강이 주도적인 지위를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14년 기준, 북미 자동차 차체용 판재 수요 중 철강재 비율은 98%를 차지하고 있다. 향후 차체 경량화 경쟁 가속화에 따라 어느 정도 대체 소재 비율이 높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전환비용 증가에 따른 진입 장벽으로 여전히 자동차 소재 시장에서 철강의 위상은 굳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종민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게재지: 한경비즈니스<원문 보기>